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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이씨 - 역사적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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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남(李洪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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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귀암]_광호 작성일 07-12-06 07:11 조회 1,59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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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5(중종 1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사중(士重), 호는 급고자(汲古子). 자(滋)의 손자로 좌통례(左通禮) 약빙(若氷)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홍언승(洪彦昇)의 딸이다.

1538년(중종 33)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공조좌랑을 역임하고,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한 뒤 1546년(명종 1) 중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대윤파의 여당을 제거하기 위하여 소윤파 이기(李芑)·정순붕(鄭順朋) 등이 전라도 양재역(良才驛)의 벽서사건을 빌미로 정미사화를 일으킴에 따라 그의 아버지가 대윤파라 하여 사사(賜死)되고, 그도 연좌되어 영월에 유배되었다.

1549년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동생 홍윤(洪胤)이 조정을 비난하는 말을 하자, 동생이 모반을 도모한다고 무고하여 처형당하게 하였다.

이해 동생의 모반을 고발하였다는 공으로 소환되어 장단부사로 있을 때 백성을 학대한 죄로 파직되었다가 1561년 공조참의로 다시 기용되고, 1569년(선조 2) 동생을 무고한 사실이 분명하여 삭직되었다.

저서로는 《급고유고》가 있다.



[참고문헌]

明宗實錄, 宣祖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趙啓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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