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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전종중 - 유물/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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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역사박물관 기증 종중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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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귀암]_광호 작성일 08-01-30 01:17 조회 1,81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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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이씨 통문]




신수 l 1893년 l 50.0 x 145.2


1893년에 광주이씨 시조 묘소의 운영과 관련하여 작성된 통문이다.

이 통문은 작성주체를 알기 어려우나 대종회에서 작성하여 전라도로 보낸 통문으로 보인다. 주요 내용은 먼저 시조의 묘제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하고, 이어서 묘소의 재실과 주변시설등에 대한 정비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구체적으로 이해 4월 원근(遠近)에 있는 여러 종인들이 영모각(永募閣)이란 곳에 모여사 논의하였는데, 내용은 시조묘소가 지난 가을 홍수로 인해서 원각(院閣)과 위토(位土), 그리고 묘막(墓幕)이 침몰하여 훼손되고 말았으나, 이를 경향(京鄕)간의 사람들이 힘을 모아 정비하자는 것이었다.

이 때 모임에 참석한 이들은 전한성좌윤 원회(元會), 전호조판서 정래(正來), 전병조참판 관회(觀會)등 24명이었는데, 참석자들은 기호지방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여진다.

아울러 이 통문에서는 앞서 언급한 둔촌선생과 최사간에 대한 사실도 소개해 주고 있다, 이에 의하면 "...둔촌선생은 시조가 된다. 홍무(洪武 무신년(1368, 공민왕17)에 선생이 역적 신돈의 화를 피하려고 부친을 모시고 낮에는 숨었다가 밤길을 달려 영천의 최사간 원도(元道)의 집으로 찾아갔다. 이듬해인 을유년에 불행히도 (부친이)돌아가시어 군의 남쪽 나현(羅峴) 자좌원(子坐原)에 장례를 지냈고, 오백년을 수호하였다......."라고 되어 있었다. 즉 원각과 위토에 대한 보전의 필요성을 언급하기 이전에 시조묘소가 영천에 위치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 설명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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