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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례(冠禮)의 의의(意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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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귀암]_광호 작성일 08-06-05 18:41 조회 4,07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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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례(冠禮)의 의의(意義) ■


현세(現世)의 성년례(成年禮)와 같으 뜻이며,

남자는 상투를 짜고, 여자는 쪽을 찐다. 보통 결혼 전에 하는 예식으로, 15∼20세 때 행하는 것이 원칙이나 부모가 기년(朞年) 이상의 상복(喪服)이 없어야 행할 수 있다.

또 관자(冠者)가 《효경(孝經)》 《논어(論語)》에 능통하고 예의를 대강 알게 된 후에 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옛날 사람들은 이 관례를 혼례(婚禮)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미혼이더라도 관례를 마치면 완전한 성인(成人)으로서의 대우를 받았다.



◐ 남자는 二十歲(20세)에 삼가례(三加禮)로 관례(冠禮)를 올렸다.

일종의 성인식이며, 머리는 상투를 틀고 관(冠)을 세번 갈아 쓰는데,


① 초가(初加)에는 입자(笠子), 단령(團領), 조아(條兒).
② 재가(再加)에는 사모(紗帽), 단령(團領), 각대(角帶).
③ 삼가(三加)에는 복두(僕頭), 공복(公服)을 썼다.


◐ 여자는 十五歲(15세)에 계례(筓禮)로 머리를 틀어 쪽을 찌고 족두리를 집안 문중 어른들에게 인사를 올리고 사당(祠堂)에도 참례(參禮)하는 의식이 있었으나.


현대에는 남자는 삭발(削髮)이요, 여자는 단발(短髮)이라. 불필요시되고 성년의 날로 맥(脈)을 이어가는 듯 하다.


※ 위의 절차전에 성례(成禮)가 이루어지면 위의 행사는 하지 않는다.




☞ 참고 : 관례복(冠禮服_관례를 올릴 때 입는 옷)


관례란 옛 제도에서 남자는 관(冠)을 쓰고, 여자는 계(筓), 즉 비녀를 꽂아 어른이 되는 예식이다.

남자는 15∼20세에, 여자는 15세에 올리는 것이 준례였으나 조혼(早婚)의 경우나 상(喪)을 당하였을 경우는 이르거나 늦는 수가 있었다. 남자의 관례복을 《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 들어 보면, 초가(初加)에 치관(緇冠:치포관)·계·복건(幅巾, 幞巾)·심의(深衣)·대대(大帶)·조(絛:납작하게 꼰 실끈)·구(屨:미투리), 재가(再加)에 모자·조삼(皁衫)·혁대(革帶)·혜(鞋:짚신), 삼가(三加)에 복두·난삼(襴衫)·대(帶)·화(靴:구두)로 되어 있다. 삼가례(三加禮)의 절차를 복식중심으로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관례 3일 전 주인이 사당에 고하고, 계빈(戒賓)이라 하여 손님을 청하며, 당일 날이 밝으면 방 가운데 탁자에는 난삼·대·화·조삼·혁대·혜·심의·대대·이(履)·즐(櫛:빗)·약(掠:망건)을 진열하고, 서쪽 계하(階下)의 탁자에는 복두·모자·관·계·건(巾)을 반(盤)에 올려 보로 씌워 진열한다. 먼저 성복(盛服)한 주인 이하와 관례자가 총각임을 표시하는 쌍계(雙紒:쌍상투)를 하고, 남색 견(絹), 또는 주(紬)로 만들고, 깃·도련·소맷부리에 금(錦)으로 연식(緣飾)한, 동자(童子)의 상복(常服)인 사규삼(四衫:中致莫을 대용하기도 함)에 행전(行纏)을 치고, 동자가 신는 채극(彩屐)을 신고 나와 서열한다.

다음 집례자인 빈(賓)이 이르고, 주인은 이들을 맞이하고 승당(升堂)하여 관례를 올린다. 초가에서는 쌍계를 합계(合筓)하여 상투를 틀고 약을 하고, 치관,즉 흑색의 베 또는 사(紗)에 옻칠한 오량(五梁)으로 되어 있는 유생용 치포관에 계를 꽂은 다음 위에 흑색 증(繒) 또는 주를 사용한 복건을 쓰며, 백세포(白細布)로 된 심의로 갈아입고, 백색 증으로 만든 대대(大帶)를 오색사(五色絲)로 만든 조 또는 청조(靑組)로써 약결(約結)하여 띠고, 백대(白帶) 또는 조(組)로써 뒤축을 묶고 그 끝을 신코의 장식으로 삼은, 흑견(黑絹) 또는 조포(皁布)로 만든 구를 신는다.

재가에서는 모자, 즉 사·나(羅)·단(緞)으로 만든 감투라 하였으나 대개 사모(紗帽)로 갈아쓰고, 흑단령(黑團領)이라 하는 조삼(皁衫)에 혁대를 띠며(絛를 띤 청색 道袍를 대용하기도 함), 혜를 신는다.

삼가에서는 복두로 갈아쓰고, 남색 견 또는 옥색 견포(絹布)로 만들고, 깃·도련·수구를 청흑색 견으로써 연식한 난삼에 세조대(細絛帶)를 띠고 화를 신는다.

삼가례가 끝나면 축연이 있는데 이를 초(醮)라고 한다. 그러나 관례 의식이 복잡할 뿐 아니라 삼가 의식에 따라 삼중의 복식을 준비해야 하는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현실적으로 문헌에 명시된 의식을 따르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조선 말기에는 삼가의 절차를 밟지 않고 관의 경우는 망건·복건·초립(草笠)을 한꺼번에 거듭 씀으로써 삼가를 대신하고, 옷은 단령포·도포·중치막(中致莫:大氅衣)·주의(周衣:두루마기) 등 있는 대로 편의에 따라 착용하는 것이 통례가 되었다.

관례를 올린 소년이 흑립(黑笠)을 쓸 때까지 복건 위에 초립을 쓰고 다녔다 하여 초립동(草笠童)이란 호칭이 붙었다.




☞ 참고 : 오늘날의 성년식(성년의 날)


만 20세가 된 젊은이들에게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짊어질 성인으로서 자부심과 책임을 부여하는 날로, 매년 5월 셋째 월요일이며, 국가청소년위원회가 주관한다.

1973년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6615호)에 의거 4월 20일을 성년의 날로 정했다가 1975년 5월 6일로 변경한 뒤 1985년부터 5월 셋째 월요일로 정해 기념일 행사를 열고 있다.

예로부터 나라·민족별로 다양한 성인식 행사가 있었는데, 한국에서도 고려시대 이전부터 성년례(成年禮)가 발달해 어린이가 어른이 되면, 남자는 갓을 쓰고, 여자는 쪽을 찌는 관례(冠禮) 의식을 통해 공식적으로 어른이 되었음을 알렸다.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첫째 관문인 ‘관’이 바로 이 성년례를 말하는 것이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만 20세가 되면, 지역이나 마을 단위로 어른들을 모셔 놓고 성년이 되었음을 축하하는 전통 의례를 치르는 곳이 많았으나, 갈수록 서양식 성년식에 밀려 전통 성년례의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문화관광부(후에 담당기관이 국가청소년위원회로 변경)에서는 이러한 전통 성년례를 부활시켜 청소년들에게 전통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고, 전통 성년례에 담긴 사회적 의미를 깨우쳐 줄 목적으로 1999년부터 표준 성년식 모델을 개발, 전통 관례복장을 갖추고 의식을 주관하는 어른인 ‘큰손님’을 모셔놓고 상견례(相見禮) · 삼가례(三加禮) · 초례(醮禮)를 거쳐 성년선언으로 이어지는 성년의 날 행사를 한다.

이 날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성년의 날 기념식을 열고 일정한 절차에 따라 성인식을 거행하며, 청년 · 청소년지도자 · 청소년단체 등에게 상을 주기도 하는데, 한 예로 서울특별시에서는 나라사랑상 · 서울청년상 · 서울청소년지도자상 등을 수여한다.

성년식을 치른 사람은 법률적으로 성인이 되고 이때부터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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