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이씨 소개 / 방계종회 / 율정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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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계종회 :

십운과공 

(十韻科公) 

율정공 

(栗亭公) 

석탄공 

(石灘公) 

암탄공 

(巖灘公)  




율정공(栗亭公) 휘관의 묘비명
 
 

공(公)의 휘(諱)는 관의(寬義)요 자(字)는 의지(義之)요 성(性)은 이(李)니 광주인(廣州人)이다.


시조(始祖)의 휘(諱)는 자성(自成)이니 신라내물왕조(新羅奈勿王朝)에 내사령(內史令)의 벼슬을 지냈고 고조(高祖)의 휘(諱)는 한(漢)이니 사정(司正)이요 증조(曾祖)의 휘(諱)는 록생(祿生)이니 성균관생원(成均館生員)이요 조(祖)의 휘(諱)는 밀(密)이니 증이조참의(贈吏曹參議)요 고(考)의 휘(諱)는 지(知)이니 증이조참판(贈吏曹參判)이니 일찍 의주판관(義州判官)을 지낼 때 중국인(中國人)이 후(厚)히 뇌물을 바치며 밀수(密輸)장사를 하려고 하였으나 공(公)은 뇌물로 주는 비단실 十묶음을 홀로 물리쳐서 청렴(淸廉)함이 천조(天朝)에 까지 전(傳)해졌고 세종(世宗)께서는 포상(褒賞)으로 의복(衣服)을 하사(下賜)하시고 정려(旌閭)까지 내렸으며 청백리(淸白吏)로 녹선(錄選)하였다.


공(公)이 기축년(己丑年)에 나셔서 송정금반지문(松亭金泮之門)에서 수업(受業)하여 학술(學術)이 정밀((精密)하고 덕행(德行)을 겸비(兼備)하여 일두 정여창(鄭汝昌)과 물재(勿齋) 손순효(孫舜孝)와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이 모두 스승으로 섬겼다.


세종조(世宗朝)때에 진사(進士)에 올랐고 후(後)에 이천(利川) 양악산(陽岳山)밑에 물러가 살며 스스로 호(號)를 율정(栗亭)이라 하고 성리학(性理學)을 연구(硏究)하며 이를 이어 발전(發展)시키는 것을 그 임무(任務)로 삼았으며 공경대부(公卿大夫)들이 그 학행(學行)으로 천거(薦擧)하여 율봉도찰방(栗峰道察訪)이 되었다가 얼마 후에 사임(辭任)하고 전리(田里)로 돌아왔다.


성종십사년(成宗十四年) 계묘(癸卯)(一四八三)에 왕께서 부르심에 편전(便殿)에 입대(入對)하니 왕께서 나라 다스리는 치도(治道)를 묻다가 성명(性命)의 근원(根源)에 미치고 또 천지도수(天地度數)와 일월성진(日月星辰)과 세차력법(歲次曆法)에 대(對)해 물으시니 공(公)이 상세(詳細)하게 말씀드리매 왕께서 크게 기뻐하시고 가상히 여겨 장차발탁(拔擢)하여 쓰고자 하였으나 공(公)은 늙었다며 사양하고 고향(故鄕)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였고 이 때 나이 七十五라 왕께서 그 뜻을 받아들이고 의복(衣服)을 하사(下賜)하였고 관(官)에 명(命)하여 미두(米豆)를 하사(下賜)하고 포상(褒賞)으로 장려(奬勵)하는 뜻을 보이라 하였다.


공(公)이 졸(卒)하신 후(後) 가정(嘉靖)四十四年 乙丑(一五六五)에 향현사(鄕賢祠)에 향사(享祀)되고 만력(萬曆)二十八年 庚子(一六○○)에 이천(利川) 설봉서원(雪峰書院)에 봉향(奉享)되었다. 눌재(訥齋) 박상(朴祥)이 그 행장(行狀)을 지으며 이르기를 정주(程朱)의 학문(學問)을 닦고 공맹(孔孟)의 연원(淵源)을 탐구(探究)했다 하였다. 묘(墓)는 이천(利川) 관동(冠洞) 양악산하(陽岳山下) 분토곡(墳土谷)에 있다.


비는 정부인(貞夫人) 진주강씨(晉州姜氏)니 수사(水使) 순경(純敬)의 女로서 三兄第를 낳으니 장(長)은 점이니 부제학(副提學) 도승지(都承旨) 한성판윤(漢城判尹) 증시문호공(贈諡文胡 公)이요 차(次)는 퇴(堆)이니 용천부사(龍川府使)요 차(次)는 지(址)이니 갑산교수(甲山敎授)요 점의 자(子)는 종기(宗箕)이니 공주판관(公州判官)이요 다음은 종삼(宗參)이요 女는 강세구니 감찰(監察)이요 퇴(堆)의 자(子)는 종각(宗角)이니 현감(縣監)이요 다음은 종두(宗斗)요 종익(宗翼)은 생원(生員)이요 종진(宗軫)이며 지(址)의 자(子)는 종규(宗奎)이니 장사랑(將仕郞)이요 다음은 종벽(宗璧)이니 호조참의(戶曹參議)요 女는 김백균(金百鈞)인데 생원(生員)이며 이하(以下)는 다 기록(記錄)하지 못한다.


아! 가도(家道)가 어렵게 되어 공(公)의 높은 덕(德)과 훌륭한 공적(功績)이 일성(日星)과 같이 빛났건만 이제 와서 비석(碑石)을 세우고자 하니 세대(世代)는 비록 멀다 하나 어찌 한 구절(句節)의 명(銘)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인(因)하여 명(銘)하여 가로되덕을 심는 것은 나무를 심는 것과 같고 학문(學問)을 쌓는 것은 곡식을 쌓는 것과 같이 하였네.


풍우(風雨)에도 꺾이지 않고 천년(千年)을 두고 향사(享祀)받으리로다.


歲辛丑 月 日
十四代孫 泰均 삼가 씀 



이천 설봉서원 액 
 

서원사우(書院祠宇) 세 칸 복천서선생(福川徐先生) 희(熙) 율정이선생관의(栗亭李先生寬義) 모재김선생(慕齋金先生) 안국(安國) 강당(講堂) 네 칸 삼현(三賢) 사우(祠宇)는 가정(嘉靖) 갑자년(甲子年)에 부사(府使) 정현 이 府 서쪽 안흥지(安興池)가에 설립했다.


만력(萬曆) 임진년(壬辰年)전에 府 서쪽 二리쯤에 있는 설봉산(雪峰山) 아래로 옮겨 드디어 설봉서원(雪峰書院)이라 했다.


춘추로 향사하고 있고 사액 되지는 않았다.
 



過雪峰書院 舊址有感


 
비단 같은 단풍 빛 구월(九月) 하늘에

노란 국화 푸른 대가 고음 더하네.


겨우 서원 찾았으나 그림자조차 없어

다만 남은 터만 보고 선생님께 절하지 못하였네.


바른 쪽에 설봉(雪峰) 있으나 봉우리 아직 희지 아니하고

앞에 못 물 가로 놓여 있는데 물빛 더욱 검네.


거문고 울리던 옛 땅에 새 울음 남아 있어

벽해(碧海)와 상전(桑田)의 변화(變化) 전(傳)하네.
 



== 대종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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