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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이씨 - 역사적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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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언(李誠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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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귀암]_광호 작성일 07-12-06 08:47 조회 1,38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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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4(중종 29).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군미(君美). 정국3등공신인 찬성 손(蓀)의 아들이다.

중종반정 후 정국공신(靖國功臣)4등에 책봉되었고, 1509년(중종 4)에는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510년에는 지평에 임명되었다.

1511년에 장령을 지낸 뒤 1512년에는 무재(武才)가 있다고 해서 김해부사에 제수되었으나, 노부모 봉양을 이유로 부임을 회피하였으므로 수원부사와 서로 바꾸었다.

1517년에는 수원부사로 있으면서 이행(李荇)을 변론한 상서가 광패(狂悖)한 표현이 많다고 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519년 조광조(趙光祖) 등 신진사류에 의하여 이루어진 대규모의 정국공신 삭훈시에 그도 삭훈되었다가 기묘사화 후 복적되었다.

1522년에는 당시에 통훈대부 검상이었으나, 무재를 지닌 문신으로 여겨져 당상관으로 가자된 뒤 만포첨사에 임명되었다.
1525년 전라좌도수군절도사를 거쳐 1528년에는 다시 무재가 있다는 이유로 가자되면서 함경도관찰사에 제수되었으나 대간의 반대로 부임하지는 못하였다.

그뒤 황주목사를 지내고 1531년 함경북도병마절도사, 1532년 함경도관찰사를 거쳐 1533년에는 한성부좌윤에 이르렀다.

1534년에 진위진향사(陳慰進香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國朝榜目. 〈任先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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