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李 滋) > 광주이씨 - 역사적인물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광주이씨 - 역사적인물

acccbf1ee4bce4b3163fff0a141dadb8_1571742161_4737.jpg
 

acccbf1ee4bce4b3163fff0a141dadb8_1571742161_4737.jpg
 

이 자(李 滋)

페이지 정보

작성자 [홈:귀암]_광호 작성일 07-12-06 09:03 조회 1,865회 댓글 0건

본문

1466(세조 12)∼1499(연산군 5).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수덕(樹德). 세우(世佑)의 아들이며, 약해(若海)의 아버지이다.

1494년(성종 25)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의 정자·저작·박사 등을 역임하였다. 연산군이 점점 광포하여지자 경연에서 만날 때마다 풍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눈물을 흘리고는 하였다. 함창현감에 배수되어서는 여씨향약(呂氏鄕約)과 시(詩)·예(禮)로 다스려 풍속이 변하였다.

《성종실록》 편찬에 춘추관기사관으로 참여하였고, 1498년(연산군 4)에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스스로 반드시 죽을 것이라 하고 종음(縱飮)하여 죽었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國朝榜目. 〈崔珍玉〉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광주이씨 석전종중

  • 010-2068-2831
  • 경북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귀암
  • 제작/관리이광호
  • 로그인하셔야합니다.질문과답변, 자유게시판등
  • 질문과답변
Copyright © 2019 광주이씨 석전종중.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