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공(담명) 묘소 > 석전종중 - 묘소/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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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전종중 - 묘소/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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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묘역재실 정재공(담명)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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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귀암]_광호 작성일 07-12-08 01:34 조회 2,30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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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은 1646年 7月에 歸巖公의 長子로 태어나시었다. 當代의 巨儒 眉叟 (諱 許穆) 先生에게 師事하였으며, 1670年 大科 亞元으로 及第하여 慘選, 敎理, 都承旨, 工,禮曹參判, 嶺南觀察使, 大司成, 大司憲, 副提學, 吏曹參判 등을 歷任하셨다. 庚申士禍(경신사화)時 歸巖公꼐서 억울하게 慘禍를 입으시는 것을 처음부터 지켜보신 公은 너무나 원통하여 歸巖公의 피 묻은 적삼을 九년동안 입고 지내셨으며, 1688年 己巳換局(기사환국)때는 歸巖公의 無辜함을 밝히고 雪寃하셨다. 己巳換局 이듬해 嶺南地方에 未曾有(미증유)의 가뭄으로 한톨의 곡식도 수확하기 어려웠다. 公은 觀察使로 赴任하여 百姓을 救恤하는데 盡心을 다하였으며, 賑恤作業 數個月 만에 검은 毛髮이 희게 변하였다고 한다. 이때의 狀況을 소상히 記錄한 賑政錄이 두 권이 있다. 公이 肅宗 20年 甲戌獄事(갑술옥사)로 昌城에 流配되어 가시면서 “生死는 두렵지 않으나, 늙으신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고 멀리 떠나니 간장이 끊어지는것 같다” 라고 하시었고, 流配地에서 80歲老母를 그리며 읊은 思老親曲(사노친곡) 十二章을 한글로 지으셨다. 文集 八卷이 있다. 1701年 1月 16日에 卒하시니 高靈郡 茶山面 藿村里(고령군 다산면 곽촌리) 山 25番地 祖考이신 洛村公 墓下 酉坐에 安葬하였음 墓碣銘은 通政大夫 前行司諫院 大司憲 知製敎 定齋 柳致明이 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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