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전종회소개 / 동산재내역 / 소암재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석전종회소개 / 동산재내역 / 소암재

석전종회소개 / 동산재내역 / 소암재

동산재내역 : 동산재 낙촌정 문화재 지정고시
경암재 소암재
 


소암재


cff6e3c19b81566a1cde51a5f3970a14_1587887738_5188.gif



紹巖齋 (소암재) 유래 및 내역
 
이 齋舍(재사)는 靜齋公(정재공)을 爲(위)하여 別祠奉享(별사봉향)하려고 세운 建物(건물)이므로 뒤에 一間廟室(일간묘실)이 있다.


公(공)은 肅宗 庚申年(숙종 경신년)에 文翼公(문익공)이 禍(화)를 당한 후로 피옷을 十年(십년)을 입고 雪寃(설원)하기를 期圖(기도)하던 中(중) 己巳年(기사년)에 이르러 刑曺參議(형조참의)로 부르심을 받고 上京(상경)하여 庚申士禍 主謨者(경신사화 주모자)를 復讐雪寃(복수설원)하고, 庚午年(경오년)에 嶺南 七十一州(영남 칠십일주)가 큰 凶年(흉년)을 만나 百姓(백성)이 餓死(아사)상태에 이른지라.


調廷(조정)에서 公(공)이 아니면 이같은 大賑政(대진정)을 담당하기 어렵다하여 公(공)을 慶尙道觀察使(경상도관찰사)로 任命(임명)하였다.


公(공)이 赴任(부임)하여 各道(각도) 곡식 數十萬石(수십만석)을 配定(배정)받고, 또 사사로 數千石(수천석)을 貿入(무입)하여 男女老少壯幼(남녀노소장유)를 等分(등분)하여 盡心救濟(진심구제) 함으로 餓死病死者(아사병사자)가 한사람도 없었다.


百姓(백성)들이 永世不忘碑(영세불망비)를 세워 至今(지금)까지 守護(수호)하여 현재는 石田西便(석전서편) 수도山(산) 중턱에 移建(이건)되어 있다.

紹巖齋(소암재)라 懸板(현판)함은 歸巖公(귀암공)의 德業(덕업)을 紹述(소술)하였다고 儒林(유림)이 相議(상의)하여 지은 齋號(재호)이다.


公(공)이 記錄(기록)한 賑政總覽(진정총람) - [경오년 영남진정장부] 一卷(일권)과 道眼記(도안기) - [영남산리를 기록한 책] 一卷(일권)이 地方 文化財(지방 문화재)로 指定(지정)되고, 靜齋文集 八卷(정재문집 팔권)이 刊行(간행)되었음.
 



광주이씨 석전종중

  • 010-2068-2831
  • 경북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귀암
  • 제작/관리이광호
  • 로그인하셔야합니다.질문과답변, 자유게시판등
  • 질문과답변
Copyright © 2019 광주이씨 석전종중.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