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이씨 역사 / 둔촌할아버지 / 정훈,유묵,효자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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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촌할아버지 : 둔촌유사 묘갈문 정훈,유묵,효자우물
신도비명

사우연원록




정훈(庭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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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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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남한산성 국청사(廣州 南漢山城 國淸寺)의 효자(孝子)우물



경기도 광주에 元齡(원령:후일 개명 集, 호 遁村둔촌)이라는 소년이 살고 있었다. 그가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기 전 어렸을 때에 그의 아버지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종기(등창)가 등에 나서 고생을 하고 있었다.

종기가 하도 크고 병이 중하였기 때문에 출입은 물론 제대로 누울 수도 없어서 고생이 막심하였다.

별의별 약을 다 써 보아도 효험이 없기 때문에 근심은 날로 더해갔다. 효심이 지극한 둘째 아들 원령은 가난한 살림살이에도 정성을 다하여 아버지의 병 간호를 하였다. 여기에서 잠시 주인공 부자에 대해 살펴 보기로 한다.

소년 원령의 아버지는 이름이 唐인데 광주 아전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인물이 출중하고 영특하여 광주 유수 이모의 반신불수 따님에게 장가를 들게 되었다. 그 후 반신불수이던 둘째가 集으로 학문지절이 우뚝하여 삼은과 도우교제 하였으며 고려의 사양국운을 진작하다가 조선개국 6년 전에 영민 하셨는데 이분들 오형제가 모두 등과하여 광주이씨 五子俱等科(오자구등과)의 신화를 창출한 분들이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오랜 세월 고생이 막심하자 어린 아들 원령은 日久月深(일구월심)으로 아버지의 병을 하루 속히 낳게 하여 달라고 산신령님에게 기도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밤 아버지 곁에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산신령이 나타나 이르기를 내일부터 목욕재개 하고 몸을 깨끗이 한 연후에 국청사 부처님께 나아가 열심히 기도를 드리면 아버지의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후 홀연히 사라졌다.

잠에서 깬 소년 원령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예사 꿈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원령 소년은 이튿날 아침부터 새벽에 일어나 목욕을 하고 국청사 대웅전에 가서 정성껏 부처님께 기도를 드렸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를 계속하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그날도 새벽의 찬 이슬을 맞으며 절에 가서 기도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원령이 무심히 길가 바위쪽을 바라보니 바위 틈에서 물이 졸졸 흘러 내리고 있었다. 그 밑에는 물이 고이도록 우물이 파여 있었다.

물을 보는 순간 소년은 심한 갈증을 느꼈다. 그래서 우물로 다가가 우물에 엎드려 입을 대고 몇 모금의 물을 들여 마시고 샘물을 들여다 보았다.

샘 속에는 이상하게도 금붕어 한 마리가 유유히 놀고 있었다. 하도 예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금붕어의 노는 모양을 한참 동안 들여다 보던 원령은 조심하여 금붕어를 잡아서 집에 가지고 와 그릇에 담아 방에 놓아 두었다. 그 날 밤의 일이었다. 한밤 중에 환부의 통증으로 잠을 깬 아버지가 하도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자 하였으나 마실 물이 업었다. 그렇다고 곤히 잠자는 어린 아들을 깨우기도 안쓰럽고 그렇다고 물을 뜨러 밖으로 나갈 수는 더욱 없어서 그저 꾹 참고 있었다.

그러나 참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심한 갈증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아들의 머리맡에 놓여 있는 금붕어 그릇의 물이라도 마셔야 되겠다고 쭉 들이키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어났다. 등에 종기가 별안간 터지면서 고름이 쏟아지고 몸이 시원해 옴을 느꼈다.

아버지는 엉겹결에 곤히 잠자는 아들을 깨웠다. 그리고는 등을 좀 보라고 했다.

「별안간에 고름이 흐르는 것 같더니 아픈 게 싹 가셔 버리는구나.」이 말을 들은 아들은 환부를 들여다 보면서 어떻게 하셨는데 그러냐고 물었다. 하도 목이 말라서 네가 잡아다 놓은 금붕어 그릇의 물을 마셨더니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아버지의 등에서 흐르는 고름을 닦으며 원령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꿈 속에 나타난 산신령의 말대로 국청사 부처님께 기도를 한 까닭에 금붕어를 잡게 되었고 그 금붕어를 고이 잡아 와 방에 갖다 놓은 까닭에 아버지의 병을 고치게 된 것 같았다.

이 때 아버지께서 붕어 그릇에 물을 내가 다 먹었으니 우물물이라도 대신 떠다가 채워 놓으라고 일렀다. 참, 그래야 되겠다고 생각한 소년 원령이 부엌으로 나가서 독의 물을 한 바가지 떠다가 붕어 그릇에 부으니 이상하게도 그토록 찬란하던 황금빛의 금붕어가 일시에 검어지는 것이었다.

「얘야, 저 금붕어를 어디서 잡아 왔는지 아무래도 금붕어가 살던 물이 영험이 있나 보구나.」라고 했다.
「절 근처에 있는 조그만 샘에서 잡아 온 거에요.」아들이 대답했다.
「그러면 날이 밝는 대로 다시 그물을 떠다가 갈아 보아라.」

오랜만에 희색이 만연해진 아버지와 아들은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기쁨을 나누었다. 동이 트자 집을 나선 원령은 큰 그릇을 가지고 한걸음에 샘으로 달려가서 물을 떠다가 금붕어 그릇의 물을 비우고 새로 길어 온 물을 채우니 이상하게도 금붕어의 빛깔이 다시 황금색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이를 본 아버지는 과연 그 샘물이 영험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환부에도 바르라고 하였다. 원령은 샘물을 아버지의 터진 종기 환부에도 발라 드렸다.

「아, 시원하다. 어디 한 모금 마셔보자」이렇게 해서 아버지의 병환은 오래지 않아 완치가 되었다. 그 후 이 소문이 꼬리를 물고 퍼지자 각처에서 피부병을 고치러 몰려드는 환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 샘물은 남한산성의 수어장대 아랫쪽에 있는 데 근처에 국청사라는 절이 있었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국청사의 효자 우물이라고 전한다.


그런데 여기서 유념 할 것은 이 전설이 둔촌동 둔촌약수의 개발 유래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다만 둔촌동 약수의 개발 연대가 둔촌선생의 장년기인데 비하여 국청사의 효자우물은 소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남한산성은 광주이씨 둔촌선생 선대의 세거지로 구전되는 곳이라 전기 전설과도 연관이 된다는 점을 첨언하는 바이다.



== 대종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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